『임원경제지』, 서유구 지음, 임원경제연구소 펴냄

『임원경제지』, 서유구 지음, 임원경제연구소 펴냄

임원경제지

내가 수십 년 걸려서 교정한 공든 책 『임원십육지』 100여 권을 근래에 겨우 끝마쳤으나,

다만 이 책을 맡아서 지켜줄 만한 자식과 아내가 없는 것이 한이로다.

우연히 이 책을 열어보다 슬픔의 눈물이 오래도록 흐르는 줄도 몰랐구나.

– 서유구, 『금화경독기(金華耕讀記)』 중에서

조선 최대의 실용백과사전 『임원경제지』는 조선 후기까지 발전해온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집대성한 것으로, 삶에 필요한 갖가지 실용 지식을 16개 분야로 분류하고 관련 서적과 자료, 실제 적용 방법을 망라하고 있다. 체계적이고 치밀하게 구성된 이 책은 총 113권에 28,000여 가지에 이르는 문물 지식을 담고 있으며 『사서(四書)』의 40배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을 오직 서유구 한 사람이 편집하고 저술했다. 선비가 향촌에서 살면서 알아야 할 일상의 실용지식과 예술 내용이 차곡히 담겨 있는 이 책을 통해 국사학계는 물론 관련 전통문화 산업계와 한류 콘텐츠를 한층 더 풍요롭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책이 처음 선보인 지 180여 년 만인 근래에 빛을 보게 된 것은 전적으로 이 책의 연구와 번역에 20여 년 가까이 묵묵히 매진한 임원경제연구소 소장 학자들의 공이 크다. 오늘날 풍석 서유구를 되살리고 있는 학자들의 노고와 학문적 성과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통해 농사, 음식, 염색, 건축, 의약, 의례, 예술, 상업 등 각 분야의 현장에서 우리 전통을 재현·발전시켜 맥을 잇고 있는 분들을 응원한다. 최근 속속 번역 출간되어 나오는 각 지(志)가 완역될 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그날을 고대하며 이미 번역된 『임원경제지』의 개관서에서 서문과 16지 각각의 서문 일부만 발췌해 싣는다.


임원십육지서문

  1. 무릇 사람이 세상을 사는 데에는, 벼슬하거나 벼슬하지 않고 집에 들어앉아 사는 두 가지 길이 있다. 벼슬할 때는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들에게 베푸는 것에 힘써야 하고, 벼슬하지 않을 때는 힘써 일하여 먹고살면서 뜻을 기르는 것에 힘써야 한다. 세상을 구제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살펴보면 모두 정치와 교화에 필요한 것이어서, 이에 대해 골고루 갖추어 서술한 책은 원래 많았다. 그러나 시골에 살면서 뜻을 기르는 데 필요한 책은 수집해놓은 것이 거의 없다. 우리나라는 겨우 『산림경제』 한 책밖에 없는 실정이나, 이 책은 군더더기가 많은 데다 채록한 내용도 협소하여 이것을 흠으로 여긴 사람이 많았다. 이런 이유로 여기에서는 시골에 사는 데 필요한 내용을 대략 채록하여 부(部)로 나누고 표제어[目]를 세운 다음, 여러 책을 조사하여 채워 넣었다. 이 책에 ‘임원’으로 제목을 붙인 까닭은, 벼슬하여 세상을 구제하는 방법이 아님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1. 무릇 밭 갈고[본리지] 베 짜고[전공지] 작물을 재배하고[관휴지] 나무를 심는 기술과[만학지], 음식을 만들고[정조지] 가축을 기르고 사냥하는 방법은[전어지] 모두 시골에 사는 사람에게 필수이다. 또 날씨의 변화를 예상하여 농사에 힘쓰고[위선지], 터를 살펴보아 살 만한 곳을 가려 집을 지으며[상택지], 재산을 늘려 생계 문제를 경영하고[예규지], 기구를 구비하여 사용에 편리하도록 하는 일도[섬용지] 역시 마땅히 있어야 할 것들이다. 이 때문에 지금 자료들을 수집한 것이다. 그러나 힘써 일하여 먹고사는 일들에 대해서 참으로 잘 갖춰져 있다고 해서 시골에서 수양하는 선비가 어찌 먹는 일에만 신경 쓸 수 있겠는가? 화초 가꾸는 법을 익히고[예원지], 글과 그림을 바르게 공부하는 것에서[유예지]·[이운지] 보양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도[보양지] 그만둘 수 없는 일들이다. 의약 같은 것은 [인제지] 궁벽한 곳에서 위급할 때 쓸 수 있고, 경사나 흉사 때의 예식도[향례지] 이를 공부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대략 첨가해야 할 것이라서 이에 관한 것들도 함께 수록했다.
  1. 인간이 살아가는 데 사는 땅이 각기 다르고 관습과 풍속이 같지 않다. 그러므로 시행하는 일이나 필요한 물건은 모두 과거와 현재의 격차가 있고 나라 안과 나라 밖의 구분이 있게 된다. 그러니 중국에서 필요한 것을 우리나라에서 시행하는 것이 어찌 장애가 없겠는가?

이 책은 오로지 우리나라를 위해 나온 것이다. 그래서 자료를 모을 때 당장 적용 가능한 방법만을 가려 뽑았으며 그러하지 않은 것은 취하지 않았다. 또 좋은 제도가 있어서 지금 살펴 행할 만한 것인데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처 강구하지 못한 것도 모두 상세히 적어놓았다. 이는 후세 사람들이 이들을 본받아 행하게 하고자 해서이다. (후략)

 

1본리지(本利志)서문 – 정명현 옮김

왜 본리(本利)라고 이름을 지었는가? 옛 기록에 “봄에 밭 가는 것이 ‘본’이요 가을에 수확하는 것이 ‘리’이다”라는 말이 있으니, 본리는 ‘밭 갈고 수확하는 것’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밭 가는 것을 왜 ‘본’이라 하고, 수확하는 것을 왜 ‘리’라고 하는가? 옛날에 행상 두 사람이 길을 가다가 어느 쪽이 이익이 많이 나는지를 서로 비교하였는데, 걸어가면서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이때 길가 조밭에서 이삭을 베던 한 아낙이 이삭 하나를 들어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그 뜻은 바로 씨앗 하나를 밑천으로 백배 천배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밭 갈고 수확하는 것’이라 말하지 않고 굳이 ‘밑천과 이득[本利]’이라 말한 것은 이것을 부러워하기 때문이다. (후략)

2관휴지(灌畦志서문 – 이규필 옮김

하늘이 사람을 낳을 때 반드시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그 삶을 보존하게 한다. 사람이 먹을 것을 받을 때 풀과 남새를 먹는 것은 하늘로부터 받은 바에 순종하면서 만족하는 것이다. 깃털이나 털이 달린 짐승, 물고기나 껍질이 있는 수중 동물을 먹는 것은, 받은 바에 거스르고 꾀를 낸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무릇 혈기가 돌고 지각이 있어 꿈틀대는 무리는 사람과 거의 같기에, 서로 넘보려고 하는 습성이 있다. 하지만 생명의 기운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흙에 머리를 거꾸로 박고서 부드럽고 연하여 스스로 돌아다니지 못하는 식물만은, 기꺼이 사람에게 먹을거리로 제공되니 이는 본디 자연스러운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풀을 먹는데, 그 가운데 결실을 취하여 후생의 근원으로 삼으니, 구곡(九谷)[9가지 곡식] 같은 결실이 바로 그것이다. 그 가운데 꽃과 잎, 뿌리와 줄기를 취하여 곁들이니, 그것이 채소이다. 이들은 모두 사람이 재배하는 대로 취하기 때문에 별 어려움이 없다. (후략)

3예원지(藝畹志)서문 – 고연희 옮김

풀 종류 중에서 먹을거리가 될 만한 것은 모두 채소류에 넣었다. 먹기에는 맞지 않지만, 꽃이나 잎의 완상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따로 구별하여 「예원지」로 만들었다. 이 제목은 ‘난초를 기른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 모두 5권인데, 제1권은 ‘총서’이고, 제2 · 3권은 ‘꽃류’, 제4권은 ‘훼류’, 제5권은 ‘꽃 이름 고찰’이다. 무릇 우리 사람은 살아가면서 오관(五官)을 사용한다. 그러나 단독으로 움직일 수 없으니, 반드시 자연의 사물에 힘입어 오관을 길러야 삶이 풍부해진다. 곡식이나 고기, 남새와 같은 것들은 입을 길러주는 것으로, 그 구비됨이 충분하다. (후략)

4만학지(晩學志)서문 – 차영익 옮김

『시경(詩經)』 「용풍(鄘風)」에 “개암나무와 밤나무, 가래나무와 오동나무, 개오동나무와 옻나무를 심는다.”라고 하였으니, 개암나무와 밤나무는 제사에 쓰고 가래나무 · 오동나무 · 개오동나무 · 옻나무는 기물을 만드는 데 쓰인다. 이것은 대개 집을 먼저 짓고 이어서 나무 심는 일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나무 심는 일이 어찌 중요하지 않겠는가? (후략)

5전공지(展功志)서문 – 정정기 옮김

‘전공’은 부공(婦紅)을 풀어놓은 것이다. 부공(婦紅)[여성 노동력에 의한 고치와 삼, 모시와 칡, 면의 길삼을 말한다. 이 경우 ‘紅’은 ‘공’으로 읽는다.]이란 무엇인가? 방적이다. 방적은 무엇인가? 누에요, 삼이요, 모시요, 칡이요, 목화다. 이 지(志)는 방적을 풀어놓은 방법이 이미 자세한데도, 도보까지 두어 밝힌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나라 사람이 이를 본떠 실행하게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본뜸은 무엇을 뜻하는가? 좋은 것을 택함을 뜻한다. 좋은 것을 택하는 방법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중국에서 찾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 사람에게도 나름 방법이 있는데 왜 중국에서 찾는가? 우리 것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후략)

6위선지(魏鮮志)서문 – 민철기 옮김

맑은 기운과 요기 어린 기운을 살피고, 기후를 점치고 예측하는 일은 그 유래가 오래되었다. (중략) 그러나 그 천문의 기술을 고찰하고 숙달할 수 있는 이가 드물어, 지금에 이르러서는 거의 흩어져버렸다. 전해 오는 기록에 잡다하게 남아 있는 것 중 대부분이 번쇄하고 뒤엉켜 오류로 가득 차 있으니, 누가 그것을 하나하나 밝혀줄 수가 있을 것인가. (중략) 지금 이 「위선지」에 채록해놓은 것이 모두 4권으로, 〈일 년의 예측〉과 〈비와 바람의 예측〉 두 조항으로 묶었다. 대부분이 모두 민간에서 떠도는 말이거나 점치는 요결들로, 농사짓는 이들이 의지하고 상고할 수 있도록 채운 까닭은 밭 갈고 수확하는 일을 그르치지 않기를 바라는 뜻에서이다.

7전어지(佃漁志)서문 – 편집위원회 옮김

가축을 기르는 일과 짐승을 사냥하고 물고기를 잡는 일은 다른 것인데, 지금 모두 하나의 지(志)에 넣은 것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뜻이 같기 때문이다. 만약 분류하여 논한다면 그 수요에는 대개 4가지 측면이 있다. 군대 유지를 위한 수요가 그 하나요, 놀이를 위한 수요가 또 하나며,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서의 수요가 또 다른 하나요, 봉양을 위한 수요가 마지막 하나이다. (중략)

8정조지(鼎俎志)서문 – 정정기 옮김

정(鼎)은 오미(五味)를 조화시키는 그릇으로, 발이 셋이고 귀가 둘이다. ‘鼎’이라는 글자는 위쪽은 솥의 모양을 본떴고, 아래쪽은 장작을 지피는 모습을 본떴다. 삼례(三禮)[『주례(周禮)』 · 『의례(儀禮)』 · 『예기(禮記)』]를 조사해보면 정에 담는 것은 모두 희생의 몸체이다. 그러나 『주역(周易)』 정(鼎) 괘의 상(象)에는 음식을 삶거나 솥 안의 음식을 엎지른다는 뜻이 있으니, 정은 역시 음식을 익히는 도구이기도 한 것이다. 조(俎)는 희생을 올리는 그릇이다. ‘俎’라는 글자는 반육(半肉)[반으로 나뉘어진 고기]을 본떴다. 반육은 고기를 반으로 갈라 자른 것이다. 조(俎)는 ‘차(且)’를 따르는데, ‘且’는 궤(几)[나무받침]에 발이 있는 것이다. 『예기』를 조사해보면 조에 희생을 올려서 바로 바친다. 그러나 『한서(漢書)』의 ‘도조(刀俎)’에서 ‘조’는 또한 도마를 일컫기도 한다. 다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이 음식을 끓이는 솥이라는 것은 알면서, 조가 희생을 올리는 제기라는 사실은 알지 못하니, 그 지식이 엉성하다. 이 「정조지」는 세목이 9개 있는데, 음식재료 · ‘익히거나 찌는 음식’ · 음료 · 과자 · ‘채소 음식’ · ‘가르거나 삶아서 조리하는 음식’ · 조미료 · 술 · 절식(節食)이며, 5권이다. ‘정조’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는 그 가운데 큰 것을 들어서 통괄하기 위함이다. (후략)

9섬용지(贍用志)서문 – 정도원 옮김

일찍이 농사짓는 도구와 옷감 짜는 물품에 대해 우리나라의 방식이 거칠고 뒤떨어졌다고 이미 여러 곳에서 논하였다. 후생(厚生)의 근원에서 법도대로 다하지 못한 것이다. 대개 생활용품 분야[贍用]에 이르러서는, 한숨밖에 나올 수 없는 것이 반 이상을 훨씬 넘는다. 지금 이 「섬용지」는 13개 목차[집 짓는 제도, 집 짓는 재료, 나무하고 물 긷는 도구, 불로 요리하는 도구, 복식 도구, 몸 씻는 도구와 머리 다듬는 도구, 방 안의 도구, 색을 내는 도구, 불 때거나 밝히는 도구, 탈것, 운송 기구, 도량형 도구, 공업 총정리.]로 구성하였으나 한 항목이라도 한숨이 나오지 않는 곳이 없다. 책 첫머리에는 건물 짓는 법과 재료에 대해 상세하게 정리하였다. 무릇 건축물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곳이니 그 제도에 당연히 잘 갖춰진 기준이 있어야 한다.일찍이 농사짓는 도구와 옷감 짜는 물품에 대해 우리나라의 방식이 거칠고 뒤떨어졌다고 이미 여러 곳에서 논하였다. 후생(厚生)의 근원에서 법도대로 다하지 못한 것이다. 대개 생활용품 분야[贍用]에 이르러서는, 한숨밖에 나올 수 없는 것이 반 이상을 훨씬 넘는다. (후략)

10보양지(葆養志)서문 – 전종욱 옮김

(상략) 「보양지」 안에는 정·기·신(精氣神)의 조양(調養)과 ‘몸의 수련[수진(修眞)]’에 관한 절목이 있으니, 이것은 도가와 석가의 방법을 참작한 것이다. 부모를 섬기는 방도와 아이를 기르는 법에 대한 내용이 있으니 이것은 본래 우리의 한결같은 규범이다. 대개 이러한 몸을 기르는 섭생법은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방법이 있어 도(道)의 한 단서가 되므로, 다 버릴 수는 없기에 간단히 엮어 함께 서술해 둔다.

11인제지(仁濟志)서문 – 전종욱 옮김

(상략) 임원(林園)에 살면 정식으로 명의에게 나아가 배울 겨를이 없다. 다만 간편한 방법을 택할 뿐이니 이시진[명대 의약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는 『본초강목(本草綱目)』의 저자]의 보완 역할이면 좋겠다. 또한 궁벽한 시골에는 책이 부족하므로 갑자기 병에 걸렸을 때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했다. 그래서 이 「인제지」는 의가(醫家)들의 처방을 간략히 묶어 「삼인방(三因方)」[송대(宋代) 진언의 저술로 내인(內因), 외인(外因), 내외겸인(內外兼因)의 순서로 되어있다.]의 목차를 따르고, 또한 부인과 · 소아과 · 외과 등의 과목을 첨가하여 총 28권이 되었다.

12향례지(鄕禮志)서문 – 신승훈 옮김

향(鄕)이란 글자는 두 읍(邑)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을 따랐다. 읍이란 백성들이 사는 곳을 말한다. 주나라의 제도를 상고해보면, 왕궁이 가운데에 있고, 왼쪽에 사직이 있고, 오른쪽에 종묘가 있으며, 앞으로는 조정이 있고, 뒤쪽으로 시장이 있다. 그다음에 좌우로 세 개의 향이 쌍쌍이 서로 마주 보고 있고, 이곳에 백성들이 산다. 이것이 이른바 “6향(鄕)이 왕성(王城) 안에 있다.”라는 말인데, 지금의 5부(部)와 같다. (중략)

이 「향례지」는 향음주례와 향사례를 간략하게 서술하고, 아울러 관례, 혼례, 상례, 제례를 기록하였는데, 그 제목을 ‘향례’라고 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향례가 간략하다 해서 소홀히 다루었기 때문이다. 간략하다는 것은 어째서인가? 선왕이 가르침을 베푼 것 가운데 예가 가장 크니, 예는 곧 법이다. (후략)

13유예지(遊藝志)서문 – 심영환 옮김

『임원경제지』 중에서예(藝)란 기능이다. 예의 이름은 여섯 개가 있다. 하나는 예(禮) · 악(樂) · 사(射) · 어(個) · 서(書) · 수(數)가 이에 해당한다. 하나는 『시(詩)』 · 『서(書)』 · 『예(禮)』 · 『악(樂)』 · 『역(易)』 · 『춘추(春秋)』가 이에 해당한다. 이 모두 기능의 조목(條目)이다. (중략) 지금 「유예지」 중에 다만 독서와 활쏘기, 글씨 · 그림과 실내악[方樂]의 방법만 서술하면서 다른 항목을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어째서인가? 대개 예와 악이란 선왕의 큰 가르침으로 그 조목이 매우 번잡하니, 어느 겨를에 갑자기 익힐 수 있겠는가? 또 하물며 대악(大樂)은 사라지거나 변형된 지 이미 오래되어 지금 다시 되살리려 하여도 할 수가 없다. (후략)

14이운지(怡雲志)서문 – 신영환 옮김

세상에 흘러 다니는 속어(俗語) 중에도 간혹 이치가 들어 있다. 옛날에 몇 사람이 상제(上帝)에게 호소하여 자신들의 강녕(康寧)을 빌었다고 한다. 한 사람은 “벼슬길에서 현달하여, 정승 자리를 차지하고 싶습니다.”라고 하였다. 상제가 “좋다! 해주겠노라.”라고 하였다. 한 사람은 “수만금을 가진 부자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상제는 “좋다! 이 또한 해주겠노라.”라고 하였다. 한 사람은 “문채(文彩) 있는 문장과 시가로 한세상을 빛내길 원합니다.”라고 했다. 상제는 한참 뜸 들이다가 “약간 어렵긴 하나 그 또한 해주겠노라.”라고 했다. 마지막 한 사람이 말하였다. “글은 이름자만 쓸 정도면 족하고, 재산은 입고 먹을 수만 있으면 족하니, 달리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다만 임원에서 고상하게 수양하면서 세상에서 따로 구하는 것 없이 한 몸을 마치고 싶습니다.” 상제가 이마를 찡그리며 말하였다. “이 혼탁한 세상에서 청복(淸福)[청아하고 한가롭게 사는 복]을 누리는 일은 불가능하니, 너는 함부로 구하지 말라. 차라리 다음 소원을 말하는 것이 좋겠노라.”

이것은 대개 임원에서 고상하게 사는 일의 어려움을 말한 것이다. 그러니 이 일은 참으로 어렵지 않겠는가! 사람이 생긴 이래 지금까지 몇천 년이 흘렀는데, 과연 이러한 일을 이룰 수 있었던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어렵구나! 옛날의 이른바 은자들은 그 시대의 변화에 맞닥뜨려 어쩔 수 없어 은둔했을 뿐이다. (후략)

15상택지(相宅志)서문 – 윤성훈 옮김

‘상택지(相宅志)’는 집을 짓기에 알맞은 조건에 관해 설명한 지(志)이다. (중략) 『시경(詩經)』에 “그늘인지 양지인지 살피고 물줄기를 관찰하네.”라는 구절이 있으니, 그 방위에 따라 따뜻한지 추운지를 판별하고 마실 물을 확보하기가 편한지를 살핀다는 뜻이다. 집 자리를 살핌은 이와 같을 뿐이다. 집이 비좁고 낮은 땅에 있어도 선량한 대부(大夫)가 되는 데 하등의 지장이 없고, 너무 훤하고 높은 데 있는 집은 귀신이 들여다보고 화를 끼칠 우려가 있다. 하물며 이런 임원(林園)의 살 집은 형편 되는대로 그럭저럭 이 한 몸 비바람이나 가릴 수 있으면 족하다. 길지(吉地)인지 흉지(凶地)인지 가리는 술수를 따질 계제가 못 된다. ‘전국의 명당’을 덧붙인 이유는 비슷한 성격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부분에 종류별로 분류된 전국의 이름난 터를 덧붙였다. 청빈한 선비가 자신이 사는 곳을 따라 이리저리 거닐면서 살기 좋은 곳을 선택하는 방법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또한 선비의 평소 일과로 정한 공부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16예규지(倪圭志)서문 – 김정기 옮김

(상략) 도에서 귀중한 것은 상황에 알맞음을 따르는 일이다.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으면서 보편적인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 또한 바르지 않다. 그러므로 식량과 재물을 구하는 방법을 전부 버려서는 안 된다. 단목(端木)이 물건이 쌀 때 사들였다가 비쌀 때 팔아 재물을 모았다고 해서[단목은 공자의 제자인 자공의 성(姓)이다. “자공은 공자로부터 배웠고, 물러나서는 위나라에서 벼슬하였다. 조(曹)와 노(魯) 사이에서 물건이 쌀 때 사들여 쌓아놓고 비쌀 때 팔아 재물을 모았다. 공자의 제자 70인 중 자공이 가장 부유했다.” – 『전한서』 「화식전」] 공자 제자 중의 현철(賢哲)로 꼽히기에 장애가 되지 않았다. 조기(趙岐)가 떡장사를 하여 생계를 이었다고 해서[조기는 『맹자정의』 14권의 주석자이다. 곤궁한 상황에 부닥쳐 북해시장에서 떡을 팔았다는 고사가 전해진다.] 어찌 경사(經師)로 추앙받는 데에 방해가 되었겠는가?

우리나라 사대부가 스스로 고상하다고 표방하며 으레 장사를 비루한 일로 여긴 것은 본래 그러했다. 그러나 궁벽한 시골에서 자신을 닦으며 대부분 가난하게 사는 무리가 많은데, 부모가 굶주리고 추위에 떨어도 알지 못하고 처자식이 힘들다고 아우성쳐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공손히 모으고 무릎 꿇고 앉아 성리(性理)를 고상하게 이야기한다. 어찌 『사기』를 지은 사마천이 부끄럽게 여길 자가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부모와 처자식을 먹여 살리는 기술을 익히지 않아서는 안 된다. 그 기술에도 구별이 있으니, 농사는 근본이고 장사는 말단이다. 이 책이 「본리지」로 시작하니 농사를 중시하는 도리이기 때문이고, 「예규지」로 마쳤으니 말단으로 삼아 가볍게 여기기 때문이다.

‘예규’라는 서명은 장사에 능통했던 백규(白圭)[중국 전국시대 위(魏)나라 사람으로, “남이 버리려 하면 내가 그걸 취하고 남이 취하려 하면 내가 그걸 준다.”라는 소신을 실행하여 재물을 모았다. – 『사기』 「화식열전」]의 상술을 엿볼 셈으로 붙인 것이다. 8도의 시장과 거리를 덧붙인 것은 재화를 증식하려는 자들이 기일에 맞춰 거래하고 여정을 계산하여 통행하기를 바라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