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달영 박사의 생애와 사상』, 김홍근 지음, 상상의숲 펴냄(2021)

『류달영 박사의 생애와 사상』, 김홍근 지음, 상상의숲 펴냄(2021)

류달영 박사의 생애와 사상

이상은 불사조다.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이상은 따라가도 따라가도 손이 닿지 않는다.

손이 닿지 않으므로 더욱 아름답고 정열을 불러일으킨다.

이상을 세운 사람으로 그 이상을 달성한 사람은 없다.

그러나 자기 뒤에 오는 수많은 사람이

그 이상을 완성하고자 생명을 걸고 싸워 준다.

위대한 이상주의자들은 참혹한 실패자들이다.

그러나 역사가 그 실패를 그대로 버려두는 일은 없다.

– 류달영, 『인생 노우트』 중에서

2021년은 성천 류달영이 태어난 지 110년이 되는 해이자, 그가 마지막 필생의 과업으로 성천문화재단을 창립한 지 30년이 되는 해다. 류달영은 일제하에 가난한 농촌의 아들로 태어나 식민치하에서 교육을 받아 자라면서도 조국독립을 꿈꿨다. 광복 후엔, 분단된 ‘조국’과 전쟁으로 피폐해진 ‘동포’에 대한 불사조 같은 사랑을 전 생애에 걸쳐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그의 가슴에 깃든 크나큰 ‘이상(理想)’이 그러한 삶으로 이끌었다. 자신이 끝내 다다르지 못할 꿈, 비록 그러할지라도 후대의 사람들이 언젠가 반드시 그 이상을 이루리라는 희망이 그가 메마른 시대를 뚫고 나오게 했다.

그의 ‘이상’은 단절됨 없이 사회 곳곳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 있다. ‘류달영’이라는 한 인간은 잊혀도 그의 ‘이상’은 면면히 이어지는 중이다. 자신이 적은 글처럼 그는 생전에 ‘위대한 이상’을 추구하였기에 참혹한 실패자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정신을 잇는 성천문화재단이 그의 ‘이상’을 완성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분명 역사는 그의 실패를 그냥 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성천문화재단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류달영 박사의 생애와 사상』을 출간했다. 15년간 류달영 선생을 가까이에서 모셨던 김홍근 박사가 쓴 이 책은 류달영이라는 한 개인의 생애를 통해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로부터 분단과 6·25의 비극을 딛고 일어서기까지, 어떻게 재생의 길을 밟아 왔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그 기저에서 한 개인의 ‘이상’이 국가의 재건과 동포의 계몽에 어떤 힘을 발휘했는지를 확인해준다.

인간 류달영의 ‘이상’을 유추해볼 수 있는 글을 본문에서 발췌해 싣는다. 이 글을 통해 우리는 이 시대에 류달영의 ‘이상’을 어떻게 완성해나갈 것인지 숙고해보고자 한다. 이에 우리 시대의 큰 스승이신 김형석 교수와 이어령 교수의 추천사, 저자 후기도 함께 싣는다.


[추천사1] 성천이 그리워진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성천 선생께서 우리 곁을 떠난 지 벌써 17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지금도 재단 이사회에 참석하면 옆자리에 앉아 계신 것 같은 착각을 하곤 합니다. 선생께서는 구상 시인과 문화재단을 창설했고 구 선생이 떠난 후에는 나와 마음의 친분이 두터웠던 것 같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나에게 “내 아들이 이사장직을 계승하더라도 좀 도와 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그 뜻을 따라 이사의 한 사람으로 남게 되었는데, 지금은 내가 102살이 되었습니다. 나도 성천 선생같이 90이 넘도록 사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부끄럽게도 내가 덕택으로 더 장수의 복을 받은 것 같습니다. 밖에 나가면 내가 아직 이사라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모르는 사람은 믿어주지 않고 아는 사람은 ‘체면도 없지 그 나이에 부끄럽지도 않나…’라고 흉보는 것 같아지기도 합니다. 내 체면을 위해서라도 이번 임기가 끝나면 선생의 부탁을 끝낼까 합니다.

선생은 인생을 재미있고도 풍요롭게 사셨습니다. 그 어려운 역사적 시련 속에서도 수필을 통해, 유머러스한 말씀으로 항상 우리에게 즐거움을 나눠 주었습니다. 한번은 나에게 “김 선생, 강원용 목사 잘 아시지요? 목소리 크게 떠들기도 하고 자기가 제일인 체 앞장서곤 하잖아요? 오래전 우리들 동년배의 지도자들이 모였을 때, 내가 ‘참 여러분이 모이셨는데 내가 항상 강 목사님께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라고 했지요? 다들 심각하게 내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내가 ‘강 목사님의 본이 어디 강씨입니까?’하고 물었어요. 강 목사가 ‘저요? 진주 강씹니다’하고 대답하데요. 그래서 내가 ‘예상대로 맞았습니다. 우리 집에 키우는 강아지가 있는데, 그놈이 목소리도 크고 잘 짖어 대곤 합니다. 그 강아지도 진주에서 왔어요. 진주 강씨거든요.’라고 했지요? 모두 함께 웃었지요. 그다음부터는 내 앞에서는 조용해졌습니다.” 하면서 함께 웃었습니다. 내가 선생으로부터 들은 비슷한 유머만도 10개쯤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은 우리를 그렇게 웃기면서도 구 시인과 강 목사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선생은 겉으로는 그렇게 즐겁게 사시는 것 같아도 마음속은 바닷물같이 넓고 깊은 애국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 뜻이 있었기에 현충원에 잠들어 계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선생이 박정희 정권을 도왔다고 해서 비판을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알기에는 4‧19 이후의 혼란기에 누군가가 나랏일을 수습해야겠다는 남모르는 걱정을 했습니다. 6‧25 전쟁을 겪은 우리 세대는 내부적 혼란보다도 공산정권의 이념과 물리적 남침을 더 걱정하던 때였습니다. 그때 저에게 남겨 준 뜻은 어떤 정권이든 대한민국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지지하고, 피해와 고통을 주는 정치는 반대하는 것이 탈 정치적인 애국심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 배후에는 김교신‧유형모 등의 정신이 잠재해 있지 않았나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좌우의 대립이 심하거나 지금과 같이 편 가르기를 일삼는 정치계를 볼 때는 국민들의 편견 없고 정치이념에 빠지지 않는, 정의와 불의, 선과 악을 구별하는 애국시민이 더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긴 역사와 넓은 사회를 위한 애국심이었을 것입니다.

성천 선생을 회고할 때마다 그분의 애국심과 인생을 지혜롭고 즐겁게 해주는 스승이 그리워지곤 합니다. 이번에 출간되는 저서가 그 일을 대신해 주리라고 믿습니다.

[추천사2] 한 사람을 만나고자 한다.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

한 사람의 생애를 책 한 권에 다 담을 수는 없다. 도서관 하나로도 부족할 것이다. 이름 없이 살다간 사람이라도 그 사람을 형성하는 것은 평생에 걸친 삶의 경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세 대대 수많은 조상의 생물학적 유전자와 더불어 정신적‧문화적 유전자도 있다. 이와 함께 이전 세대들이 거쳐온 세월의 시공간적 배경과 그 안의 다른 생명들의 조력까지도 포함한다. 따라서 한 사람의 생애란 온 우주를 품고 있다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하물며 민족의 격동기에 암울한 시대를 견뎌내고, 많은 이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 인물이라면 더더욱 책 한 권에 그의 일생을 다 담는다는 건 무리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한 사람을 만나고자 한다.

류달영 선생. 그와의 인연은 30년 전, 내가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 재직할 때다. 기업인도 아니고 재벌도 아닌, 게다가 자본과는 거리가 먼 농대 원예학과 교수 한 사람이 사재를 털어 재단을 설립한다는 소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이상에 공감한 여러 뜻있는 분들이 힘을 더한다는 소식은 우리나라 문화 행정을 맡고 있던 나에게 무척 반가운 일이었다. 고마운 마음을 담아 나는 1991년 선생이 설립한 문화재단의 계간지 창간호에 격려사를 기고했었다.

그때 우리나라는 산업화를 완성해 가던 시기였다. 이후 정보화 및 금융자본 시대를 거치며 과거엔 상상하기 어려운 경제적 풍요를 누렸다. 하지만 문화의 토대인 정신적 가치와 창조성을 잃어버린 번영은 결국 우리를 병들게 한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또한 우리는 거친 시대를 거치며 민주화도 성취했다. 그런데 행복하지 않다면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뤘다고 할 수 있을까? 산업 사회로의 진입 이후 물질과 정신, 디지털과 아날로그, 물리적 거리와 사회적 거리 … 시대에 따라 매번 새롭게 직면하는 불균형 사이에서 조화와 균형의 추를 맞추며 우리의 약동하는 생명을 지켜왔다. 코로나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지금은 이렇게 지켜온 ‘생명’이 바로 자본이 되고 ‘문화’가 행복의 토대가 되는 시대다. 이 시대에 민주주의의 완성은 제도의 개혁을 넘어 누구나 ‘문화’를 통해 약동하는 생명과 존엄한 자기 정체성을 발현하고, 나누며 즐기는 문화 민주주의 및 문화 복지주의의 실현 여부에 달려 있다.

선생은 이를 예견한 것일까. 산업사회의 성숙기에 그는 ‘호학위공(好學爲公)’을 모토로 하는 공익재단을 설립하여 정신적 가치를 드높이는 인문학 교육 및 문화사업을 시작했고, 그의 사후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그의 유산은 한국인의 정신을 일구고 마음 밭에 씨를 뿌리고 있다. 군사력이나 경제력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꽃피울 수 없다. 하지만 문화의 빛은 저마다 품고 있는 아름다운 마음 씨앗들을 싹 틔우고 활짝 꽃피우며 전쟁도, 굶주림도, 소외와 분열도 잠재울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문화적 결실, 나아가 세계인의 마음에 불 지핀 한류는 류달영 선생처럼 인간 정신의 가치를 드높인 이들의 문화적 안목과 통찰이 큰 몫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 점에서 무엇이 그러한 안목과 통찰을 가능케 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이 한 권의 책에서 독자는 가시적인 업적들 이면에 숨겨진, 어쩌면 그러한 것들의 원동력이 된 인간 류달영의 고뇌와 눈물을 행간에서 찾아 읽어내기를 바란다. 분명 무엇이 문화의 빛을 밝히는 심지가 되는지 발견할 것이다.

[본문] 민족의 미래상

김홍근(저자)

성천은 제2장 ‘민족의 미래상’을 시작하며 새로운 시간관을 소개한다. 일반적으로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흘러간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인과 관계가 시간의 법칙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AD 400년 전후에 활동했던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의 화살은 과거에서 미래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서 과거로 날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현재를 낳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현재의 창조는 고루한 과거의 업에 얽매인 것이 아니라 미래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 의해 가능해진다는 신선한 사상이다. 사람은 한번 보람찬 미래상을 가슴에 품으면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어떤 희생이라도 달게 받아들이게 된다. 가슴은 불타오르고, 정열이 온몸에 가득 찬다. 승리를 확신하는 용사를 막을 자는 없다. 현재의 가능성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미래의 강한 인력이다.

성천은 인류의 눈부신 문화 발전은 이상주의자들이 이룩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만년까지 본인이 이상주의자이며 낭만주의자임을 밝히는 데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이상을 현실로 만들려는 분투가 성천의 일생이다. 자랑스러운 미래상이 오늘을 만든다는 신념을 성천은 사랑했다. 성천은

희망찬 미래상과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를 서로 연관시켜 검토하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화석 같던 과거도 현재와 미래에 의해 크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 링컨의 소년 시절은 인고(忍苦)의 표본처럼 알려져 있다. 그가 위대한 정치가가 되었기 때문에 소년 시절의 고생은 수많은 젊은이에게 큰 교훈이 되었다. 미래에 의해 과거의 의미가 바뀌는 것이다. 성천은 한 나라의 역사도 이와 다를 것이 없다고 보았다. 수난의 역사는 미래에 따라 전혀 다르게 조명될 수 있다. 수난을 딛고 일어서면 수난은 값진 역사적 교훈으로 새롭게 해석되고 영감의 원천이 된다. 성천은 우리 민족 수난의 역사도 우리의 미래상에 따라 근본적으로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성천은 오늘날 한국인의 가장 큰 역사적 과제는 통일이라고 보았다. 한국은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분단국가다. 민족의 아픔을 도전의 에너지로 활용하자고 했다. 이 문제는 한민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냉전 체제의 완전한 종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계는 한반도에서 열릴 것이다. 가장 고통을 많이 겪은 민족이 가장 놀라운 반전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성천은 한국의 미래상으로 첫 번째는 조국통일이라고 했다. 우리는 당당히 이렇게 말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 민족의 통일은 반드시 이뤄야 할 것이고 또 이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유일한 해답이며 소신이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정치, 경제, 문화, 의식 등 각 분야에서 실력을 길러야 한다. 왜냐하면 통일이 올 때 단순히 통일만 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무엇보다 실력을 갖추고 있을 것이다. 아무도 우리를 방해할 수 없는 단단한 실력! 우리는 통일의 미래상을 놓치지만 않는다면, 반드시 깨어있는 민족이 될 것이다.

성천은 한반도의 통일이 시기적으로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한다고 믿었다. 풋살구를 억지로 따 먹으면 독성분에 중독되어 배가 아프다. 원숙한 과실을 적기에 따야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민족 통일도 살구처럼 수확의 적기가 있다. 북한을 능가하는 실력만 갖추고 있으면 모든 것은 순조롭게 이뤄질 것이다. 권력과 재력은 부패하지 않고, 국민은 향락과 이기주의를 벗어나야 한다. 무실역행이 통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성천은 확신했다. 그런데 통일의 완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통일이란 미래상을 잃지 않고 한결같이 지혜롭고 성실하게 분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 통일의 역사는 우리의 역사가 될 뿐 아니라 세계사의 귀중한 유산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통일이란 미래상은 자연스럽게 복지 국가의 미래상과도 연결된다. 덴마크인은 ‘한 사람은 만 사람의 행복을 위해, 만 사람은 한 사람의 행복을 위해’라는 구호를 통해 개체와 전체의 조화로운 복지를 이룩했고, 성천은 우리가 이 점을 상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천은 인도 힌두교의 경전 『바가바드 기타』의 한 구절도 인용한다. ‘내가 밭 갈지 않으면 만 사람이 굶주리고, 내가 길쌈하지 않으면 만 사람이 헐벗는다.’ 나와 공동체의 조화, 협동과 복지 사회는 성천의 영원한 주제였다.

“‘나’라는 개인은 전체인 우리 조국의 바탕을 만드는 데 아까운 것이 없어야 하겠고, 또 우리 조국은 복지 세계의 이상을 구현하는 데 선도적 구실을 할 수 있어야 하겠다. 통일된 새 조국, 평화 세계의 선도적 구실을 할 수 있는 조국, 세계와 함께 번영해 나가는 조국, 이것이야말로 우리들 가슴속에 한결같이 자리 잡고 있는 자랑스러운 국가관이라 할 것이다.”

성천은 우리가 이러한 국가의 주인이 될 만한 힘의 근원은 무엇보다 국민 윤리 실력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 국민 윤리 교과서의 결론에 부쳐 이러한 당부를 남겼다.

“이 나라 젊은이들이 서로 뭉쳐 이러한 투철한 신념으로 빛나는 앞날을 향해 성실과 슬기와 용기로 분투한다면, 미래의 찬란한 태양은 우리들의 영예로운 조국과 세계 평화를 위해 항상 따뜻한 빛을 아낌없이 밝힐 것이다.”

[저자 후기] 인간 오케스트라 류달영

막상 그분이 돌아가고 난 뒤에 돌아보니 류달영이란 인물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거인이다. 마치 뿌리는 깊은 땅속에 박고, 머리는 구름 위로 내놓은 거목을 보는 듯한 느낌. 그가 살아온 이력을 살펴보면 그를 ‘인간 오케스트라’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다. 다재다능했던 그의 생애는 장엄한 교향곡이 울려 퍼지는 교향악단 같다.

그의 인물됨을 생각할 때면 ‘평범한 것이 가장 비범하다.’라든가, ‘평상심이 도(道)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공자가 말한 ‘생각에 삿됨이 없다[사무사(思無邪)].’라는 말도 그에게 적합한 말이다. 그만큼 막힌 것이 없었던 자유인이었다. 철학, 종교, 정치, 경제 등 그 어느 것도 그를 속박할 수 없었다. 그의 음력 생일은 4월 초파일이다. 어쩌면 ‘사통팔달’하여 툭 트인 성격과 운명이 예정되었는지도 모른다. 유일한 그의 약점은 ‘선생님’이라는 상(相)이었다. 일종의 명예심이랄까. 그러나 그것마저도 없다면, 우리는 그에게서 친근한 인간미를 느낄 수 없으리라. 그는 큰 인물이었지만, 매우 ‘인간적인 위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아호를 스스로 ‘성천(星泉)’이라 지었다. 그리고 이름대로 살려고 노력했다. 그는 자신의 아호를 지은 내력을 이렇게 풀이했다. ‘위로 북극성을 우러러 관찰하고, 아래로 허리 숙여 돌샘의 물소리를 듣는다[앙관극성 부청석천(仰觀極星 俯聽石泉)].’ 『주역』 「계사전」의 ‘위로 천문을 읽고, 아래로 지리를 살핀다.’는 구절에서 영감을 얻어 지은 이름이다. 한국 역사상 가장 파란만장했던 시대를 살다 간 한 인물이 스스로를 갈고 닦아 마침내 ‘별’과 ‘샘’이 된 라이프 스토리는 감동적이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많은 제자들은 수원 서울대 농대 도서관 현관에 걸려 있던 아래의 시구로 그를 기억한다. 이 ‘젊은 하루’라는 시에 성천이라는 인물을 대입해 보니 구절구절이 손에 잡힐 듯이 그려진다. 그는 젊은 시절 지은 이 시 그대로 살고 간 것이다. 필자는 임종을 맞아 편안히 잠든 그의 마지막 얼굴을 지켜보면서 ‘뉘우침 없는 인생’이란 이런 것이로구나 하고 실감했다. 우리 곁에 왔다 간 자이언트, 그는 영원히 ‘인간 상록수’로 기억될 것이다.

 

젊은 하루

그대

아끼게나 청춘(靑春)을

아름 없는 들풀로

사라져버림도

영원(永遠)에 빛날

삶의 광영(光榮)도

젊은 시간(時間)의

쓰임새에 달렸거니

오늘도

가슴에 큰 뜻을 품고

젊은 하루를

뉘우침 없이 살게나